History & Culture

박화자 고문, 예술로 기록한 이민의 시간과 공동체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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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 미술사의 산증인

박화자 고문, 예술로 기록한 이민의 시간과 공동체의 기억

— Ko Song Foundation 고송문화재단 콜렉션 고서숙 이사장 추천 작가

하와이 한인 미술계의 뿌리를 함께 세워온 원로 작가 박화자 고문은 단순한 화가를 넘어, 이민 1세대 예술가로서 시대의 기억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화폭에 기록해온 살아 있는 증인이다. 오랜 시간 하와이 한인 사회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그녀는, 예술을 통해 한인 정체성을 지켜내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헌신해왔다.

“박화자 고문의 작품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이민 공동체의 삶과 기억을 담아낸 하나의 기록입니다.”

— 고송재단 고서숙 이사
박화자 화백 작품 (1978)

박화자 화백 작품 <제목 없음> (1978) · Oil on Canvas


이민의 삶에서 피어난 예술적 언어

박화자 고문은 하와이 한인미술협회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협회의 성장 과정과 함께 하와이 한인 미술계의 토대를 다져온 인물이다. 초기 이민 사회 속에서 예술 활동이 쉽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그는 꾸준한 창작과 전시 활동을 이어가며, 한인 예술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이민자로서의 삶과 낯선 땅에서의 적응 과정,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한다.

작품 속에는 하와이 자연이 지닌 강렬한 빛과 색감, 바다와 하늘, 열대 식물의 생동감이 한국적 정서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따뜻하면서도 절제된 색채 사용과 섬세한 붓 터치는 동양적 서정성과 서구 회화 기법의 균형을 이루며, 화면 전체에 안정감과 깊이를 동시에 부여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작가가 경험한 시간의 흐름과 삶의 기억,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박화자 고문의 작품에는 ‘정착’과 ‘공존’이라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민자 세대의 삶을 상징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삶의 경험과 예술적 내공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관람자로 하여금 단순한 감상이 아닌 공감과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한다.


성화(聖畫)로 전하는 믿음과 위로

박화자 고문은 특히 성화(聖畫)를 즐겨 그리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은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 삶의 고난과 희망, 치유와 위로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녀에게 성화는 단순한 종교 회화가 아니라, 이민 사회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또 하나의 예술 언어다. 전시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는 이유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이 유난히 섬세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예술가로 살아온 시간

하와이 한인 미술계 초기 활동 멤버 기록 사진

하와이 한인 미술협회 초기 활동 멤버들과 함께한 기록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김춘식, 최은경, 박화자, 고서숙 / 뒷줄 오른쪽부터: 수잔 케슬, 김송자, 임혜영, 김민정.
※ 사진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당시 함께 활동한 멤버로 이창진, 이광규, 홍태영 작가가 있다.


박화자 고문은 개인 작가 활동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하와이 한인미술협회(Korean Artists Association of Hawaii, KAAH) 창립 멤버로서 협회의 성장과 함께 하와이 한인 미술계의 토대를 다져온 중심 인물 중 하나였다. 하와이 한인미술협회는 1986년 1월 16일 창립되었으며, 박화자 고문을 비롯한 장진(Chang-jin Lee), 이광규(Kwang Kyu Yi), 김진자(Jin-ja Kim), 조관제(Kwan Jay Cho) 등의 초대 멤버들이 초기 리더 역할을 맡았다.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후배 작가 양성, 지역 전시 기획, 어린이·청소년 미술 교육 프로그램 참여 등 다양한 문화 활동에 꾸준히 힘을 보태왔다. 특히 협회 내부의 창작 분위기를 지지하고, 신진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전시 기회를 연결하는 등 ‘지속 가능한 예술 공동체’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그녀는 늘 “예술은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와 나누는 자산”이라는 철학을 강조해 왔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신진 작가 발굴과 전시 지원, 커뮤니티 행사 참여로 이어져 하와이 한인 예술 생태계가 끊기지 않도록 만드는 실천의 언어였다. 조용하지만 꾸준한 헌신이 쌓이며, 박화자 고문의 이름은 ‘작가’라는 호칭을 넘어 공동체의 문화 자산을 지켜온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와이 한인미술협회는 현재 회원이 약 40명 내외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4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협회는 하와이 지역사회 안에서 전시와 문화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고, 특히 어린이·청소년 미술 활동을 통해 차세대의 창의성과 정체성 교육을 함께 지원해왔다. 이민 사회에서 예술이 ‘개인의 성취’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기록’과 ‘세대 간 전승’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재능만큼이나 이를 품어주는 구조와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박화자 고문은 바로 그 구조를 만들고 지켜온 축 중 하나였다.


독립운동의 기억을 잇는 예술가

박화자 고문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으로서, 하와이 이민자들의 독립운동 기록 보존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초기 하와이 한인 사회가 조국 독립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조직을 운영했던 역사에 대해 꾸준히 언급하며, 이를 예술과 기록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녀왔다.

그녀에게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붓끝에서 피어나는 색채는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넘어, 한 공동체가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증언한다.


박화자 화백 작품 Prince lot hula concert (1981)

박화자 화백 작품 <Prince lot hula concert> (1981) · Oil on Canvas

박화자 화백 작품 Day in rural hawaii (1979)

박화자 화백 작품 <Day in rural hawaii> (1979) · Oil on Canvas

시대를 잇는 작품, 세대를 잇는 메시지

박화자 고문의 작품은 화려함보다 깊이를 선택한다. ‘기억’, ‘공존’, ‘정체성’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람자에게 사유의 여백을 남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그녀의 작업은 예술이 공동체의 정신적 기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하와이 한인 사회가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박화자 고문의 예술 세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문화적 좌표로 자리 잡고 있다.


고송문화재단의 시선

고송문화재단은 문화 예술을 통해 한인 사회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세대 간 연결을 강화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고송문화재단 콜렉션 고서숙 이사장은 “박화자 고문의 작품은 개인의 예술사가 아니라, 하와이 한인 이민사의 한 페이지”라며 “이러한 예술 자산이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조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획이 그녀의 예술 세계를 더 많은 독자에게 소개하고, 하와이 한인 예술의 깊이와 가치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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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알로하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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